박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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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집 | |
朴道集 | |
1864~미상 | |
전라남도 나주 細花 豊 | |
全南 靈岩 終南 新安 | |
나주, 영암 | |
의병 | |
1910년대 | |
애국장(2015) |
공적내용
"1909년 6월 전남 나주(羅州)ㆍ영암(靈岩) 등지에서 박사화의진(朴士化義陣)에 참여하여 친일 동장 처단, 헌병파견소 공격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박사화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08년 2월부터 심남일의진(沈南一義陣)에 참여하여 강진(康津)ㆍ남평(南平)ㆍ능주(綾州)ㆍ영암ㆍ나주ㆍ장흥(長興)ㆍ해남(海南)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 밖에도 전남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 밀정과 관료들을 처단하는 한편, 1909년 가을까지 전남 나주ㆍ영산포(榮山浦)ㆍ영암 등지에서 15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박도집은 1909년 6월 박사화의진에 들어가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신안동(新安洞) 동장 김치수(金致水)를 처단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나주군 욱고면(郁谷面) 소재 남창장파견소(南倉場派遣所) 헌병 상등병 1명, 보조원 3명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5년, 1914년 칙령 제104호에 의해 징역 4년 8월 13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자료
"受刑人名簿
判決文(大邱控訴院 : 1910. 2. 19)
判決文(高等法院 : 1910. 3. 29)
判決文(大邱控訴院 : 1910. 7. 23)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5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