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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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동 | |
朴正同 | |
1923.12.1~1942.6.6 | |
전라남도 나주 旺谷 新佳 391 | |
日本 東京 下谷 二長 159 | |
일본 도쿄 | |
일본방면 | |
1940년대 | |
애국장(2015) |
공적내용
"1941년 7월경부터 일본 도쿄(東京)에서 중일전쟁 이후 일본의 패전을 전망하고 김수병(金壽秉)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힘쓰다 같은 해 12월경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41년 7월경 일본 도쿄 하곡구(下谷區) 이장정(二長町) 159번지 자신의 하숙집 등에서 김수병을 여러 차례 만나 ""중일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이행하여 독일 등 추축국(樞軸國)은 결국 패전에 빠질 것이다""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이에 ""조선청년은 이 기회에 조선 동포가 일본제국주의 통치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독립을 완수하기 위하여 단결을 공고히 하고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김수병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힘쓰다 같은 해 12월 12일 도쿄 경시청(警視廳)에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경시청은 박정동을 취조한 후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하였으나, 1942년 6월 박정동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자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자료
"3ㆍ1運動時被殺者名簿(국가기록원 소장, 1953) 130면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1976) 제4(2)권 773, 1074~1075면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별집 제3권 6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