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수
|
---|
강판수 | |
姜判秀 | |
姜判水 | |
1886.10.08 ~ 1925.02 | |
전라남도 나주 公水 金谷 459 | |
全南 羅州 公水 金谷 459 | |
나주, 화순 | |
의병 | |
1900년대 후반 | |
애족장(2013) |
공적내용
"전남 나주 출신으로 전라도 일원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8월 13일 전남 나주군 왕곡면 박포와 동년 10월 27일 전남 화순군 능주 돌정에서 그의 의병 활동을 목격한 임병택(林秉澤)과 조국현(曺國鉉)의 증언에 의하면, 강판수는 의병 30명을 거느리고 나주·화순 일원에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강판수의 친구 임병택에 의하면, 그는 1908년 8월 나주군 왕곡면 박포에서 30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있었고, 광주감옥에서 8년 만에 출옥하여 귀가했다고 한다. 또 조국현에 의하면, 그는 부하 30명을 거느린 의병장으로 화순군 능주면 돌정리 서당에서 숙박하였는데, 부하를 지도 훈련하는데 강직하고 온화했다고 한다. 1909년경 체포된 강판수는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10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受刑人名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