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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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순 | |
李行順 | |
1888.1.18~1924.9.19 | |
전라남도 나주 旺谷 興洞 | |
" 全南 羅州 旺谷 興洞 " | |
함평외 | |
의병 | |
1910년대 | |
애국장(2011) |
공적내용
"이행순은 전남 나주(羅州) 출신으로 권택의진(權澤義陣)에 소속되어 전남 나주 일대에서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권택(權澤, 본명 權寧會)은 전남 남평(南平) 출신으로 1907년 6월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에서 활동하다가 기삼연이 순국하자 동년 11월 심남일의진(沈南一義陣)에 다시 들어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3월부터 10월까지 전남 영광(靈光),강진(康津),장흥(長興),남평(南平) 등지에서 일본헌병 및 순사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이어 동년 10월부터 조경환의진(曺京煥義陣)의 참모, 동년 12월부터 박민홍의진(朴珉洪義陣)의 참모장으로 함평(咸平),광주(光州),나주(羅州),남평 등 전남 일원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잠시 행적을 감추고 있다가 구세군(救世軍)의 부위(副尉)가 되기도 하였으나 동년 9월 25일 장흥군 눌양리(訥陽里)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910년 7월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행순은 권택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음력 12월 30일 곽재구(郭在九),박응천(朴應天) 등과 함께 나주군 왕곡면(旺谷面)에서 의병 활동을 일경(日警)에 밀고하던 밀정 이순흥(李順興)을 공산면(公山面) 백두리(白頭里) 산중에서 총살하였고, 1909년 음력 2월에는 나주군 왕곡면(旺谷面) 교읍리(橋邑里)에서 밀정 김봉오(金奉五)를 시동리(沛洞里) 산중에서 총살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이순행은 1917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징역 1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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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7. 5. 31)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7.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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